왜 스페인 지중해 연안에는 고사리가 없을까요?

스페인에서 살다 보면, 지역에 따라 풍경은 물론이고 자라는 식물도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특히 한국인인 저는 더욱 유심히 살펴봤는데요, 제 책, [우리 가족, 숲에서 살겠습니다]에서도 고사리 에피소드 한 꼭지를 다뤘고요, 제 블로그와 유튜브 영상에 여러 번 고사리 관련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책과 제 채널 고사리 이야기를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새로 이사 온 곳인 지중해 연안에서의 삶도 여러분께 소개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많은 구독자님께서 질문해 주십니다.
 
"요즘 고사리철인데, 왜 고사리 꺾으러 가지 않으세요?"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한국에선 산길 어디서나 쉽게 보이는 고사리가, 스페인에서는 의외로 흔하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어요. 특히 지중해 연안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우리가 예전에 살던 해발 1,200m 고산지대에서도 고사리는 흔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곳도 드문드문 군락지를 볼 수 있는 환경이었죠. 고사리 군락지를 찾기위해 얼마나 걸었던가! 그리고 마침내... 유심히 관찰하고 분석해 본 결과(물론 이미 결과는 전문가들이 다 해놓았지만,) 제가 살면서 습득한 지식으로는 토양과 환경이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았습니다. 
 

▲ 위의 사진들은 우리가 해발 1,200m 비스타베야에 살 때 고사리를 채취하던 풍경입니다.

 

고사리는 어떤 환경을 좋아할까요?

고사리는 고온 건조한 날씨보다, 그늘지고 습한 환경을 좋아합니다. 숲속의 습기 찬 공기, 부엽토가 쌓인 촉촉한 흙, 그리고 자주 내리는 비… 이런 환경이 고사리에겐 천국이죠. 그런데 스페인 지중해 연안은 고사리가 좋아할 만한 조건과는 멀지요. 
 
지중해 연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엔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온화합니다. 특히 여름철 강수량이 거의 없고, 햇볕이 매우 강하죠. 강하다 못해 아주 뜨거워 기온이 40도를 웃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기에는 숲조차 건조해지고, 수분을 좋아하는 고사리에게는 생존이 어려운 환경입니다. 너무 뜨거워 여름에 화재가 빈번하지요. 반면, 스페인 북부 지방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연중 내내 비가 자주 오고 습한 날씨가 지속됩니다. 안개와 이슬, 그리고 풍부한 그늘진 숲 덕분에 고사리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어 갈리시아 지방, 바스크 지역, 피레네산맥 지역 등 고사리 생태계가 아주 풍부하답니다. 
 
그런데 고사리는 단지 물만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유기물이 풍부하고 산성에 가까운 토양을 선호한답니다. 부엽토가 두껍게 쌓인 숲 바닥, 배수가 잘 되면서도 촉촉한 그런 곳이 이상적이지죠. 그래서 고사리가 사는 숲에 들어서면 숲 냄새부터 다르답니다. 이끼 낀 듯한 그런 숲내음... 신선하고 약간은 추운 듯한 분위기! 고산의 토양도 드문드문 산성토가 있어 그곳에 그 토양에 맞는 식물과 버섯, 나무가 자란답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지중해 연안은 석회질 토양(alkaline soil)이라 고사리가 자라지 않습니다. 처음 바르셀로나 도착했을 때 친구가 주는 물 한 컵을 마시고 거의 토할 뻔한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석회질 물이었습니다! 이 토양은 pH가 높고, 미네랄 함량은 높지만 고사리처럼 산성 환경을 선호하는 식물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중해 연안은 토양 자체가 얇고, 강수량 부족으로 유기물 축적도 부족한 편이랍니다. 완전 세카노(Secano, 스페인 지중해인들은 풀이 자라지 않고, 돌 많고, 흙이 단단할 때 이 표현을 씁니다. 뜻은 마른 곳, 건조한 곳이란 뜻입니다)입니다. 
 

▲ 위의 사진은 지중해 연안의 엘 데시에르또 데 라스 팔마스(El Desierto de Las Palmas 자연공원 풍경입니다. 이곳은 대표적인 세카노라 아주 건조하여 식물도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면서 생존한 식물이 많습니다.

 
반면, 북부나 내륙 고지대는 습한 기후와 침엽수림, 활엽수림 덕분에 부식층이 잘 형성되어 있고, 토양도 산성에 가까운 곳이 많습니다. 고사리 군락지가 그래서 지중해 연안에서는 찾기 어렵지요. 
 
이렇게 보면 고사리는 단지 식물이 아니라,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이 어떤지 보여주는 지표 같기도 합니다. 습기와 산성 토양이 있는 곳에는 고사리가 자연스럽게 자라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죠.
 
지중해 연안에서 고사리를 본다면, 아마도 그건 누군가가 정성껏 물을 주며 키우고 있는 화분 속 고사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스스로 살아남기 어려운 조건이니까요.
 
이제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리셨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이 글을 마칩니다. 질문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과 사랑 넘치는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