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산책하다 집 뒤쪽 자갈이 많은 능선에서 문득 눈길을 사로잡은 꽃을 봤습니다. 연보랏빛 꽃잎이 종이처럼 살짝 구겨진 듯한 질감을 띠고, 중심부에는 태양을 머금은 듯한 노란빛이 퍼져 있었습니다. 바위틈에서도 강인하게 피어나는 이 꽃, 바로 바위 장미(Cistus), 시스투스입니다.
한국에서는 스스로 불을 내서 죽는 꽃이라며 자살꽃이라고도 알려져 있더라고요. 꽃 관련 블로그나 유튜브 보면 시스투스 자살꽃 그러면서 아름답지만 신비하며 미스테리한 설명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스페인 야생에 많이 핀 이 꽃을 보면서 설마… 그럴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스페인 생태계에 빠삭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자연공원에서 교육사 및 테크닉 요원으로 일하는 남편에게 물어봤어요.
“스페인에서도 시스투스 꽃이 자연 발화를 한다고 알려져 있어?”
그랬더니 남편은 무슨 소리이냐며 한 번도 이런 소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시스투스꽃에는 발화를 촉진하는 물질이 있지만, 스스로 자연 발화하지는 않아.“
그럼 이 꽃에 대해 제가 알아본 정보를 여러분과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한국인에게 잘못 알려져 너무 억울할 것 같은 꽃의 한을 풀겠습니다. 😉

시스투스, 바위 장미는 이름 그대로 바위가 많은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꽃입니다. 뜨거운 태양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고운 빛깔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피어나지요. 스페인 지중해 연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 꽃은, 가뭄에도 꿋꿋이 잘 견디는 식물입니다. 하긴 건조하고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지중해에서는 강인한 식물만 살아남아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 꽃입니다.
이 꽃은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고 해요. 시스투스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모양으로 다양한 색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꽃잎이 마치 구겨진 종이 같은 질감이라는 겁니다.


위 사진의 꽃도 시스투스꽃입니다. 앞의 분홍색 색깔과 완전히 다르지요? 꽃잎이 다섯 장, 노란색의 중심부가 특징입니다.


그리고 위 사진의 꽃은 헬리안테뭄 아펜니눔(Helianthemum apenninum)이며, 시스투스과(Cistaceae)에 속하는 헬리안테뭄속(Helianthemum)에 속하는 흰색 꽃의 한 종입니다. 한 마디로 시스투스 가족...
그 외 제가 보지 못한 아주 다양한 종류의 꽃이 있다고 남편은 말하네요.
자, 그럼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다루겠습니다.
시스투스(Cistus) 꽃은 자연발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꽃씨는 화재 후 발아가 촉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이 현상을 파이로파이트(pyrophyte, 내화성 식물) 또는 파이로필릭(pyrophilic, 불을 좋아하는) 특성이라고 합니다. 즉, 시스투스 자체가 불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불이 지나간 후 발아율이 증가한다는 것이지요.
시스투스 씨앗과 불의 관계
• 시스투스의 씨앗은 매우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평상시에는 발아율이 낮습니다.
• 화재 발생 시, 고온에 노출되면 씨앗의 발아가 촉진됩니다. 이는 씨앗 껍질이 열로 인해 약해지거나 깨지면서 내부의 배아가 성장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 연기 속 특정 화학물질(예: 니트로젠 옥사이드)이 씨의 발아를 촉진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
시스투스와 산불 후 생태계 복원
• 시스투스는 화재가 빈번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중요한 “1차 천이 식물”(pioneer species)이라고 합니다.
• 산불 후 가장 먼저 자라는 식물 중 하나이며, 다른 식물들이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자연발화 vs. 화재 후 발아
• 자연발화: 시스투스 자체가 불을 내지는 않음 (즉, 스스로 타면서 불을 붙이지 않음).
• 화재 후 발아: 불이 난 후 높은 발아율을 보이며, 내화성 식물로서 빠르게 번식.
• 화재 생태계 적응: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전략.
즉, 시스투스는 화재를 촉진할 수는 있지만, 직접 자연발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이런 괴담이 생겼을까요?
왜 한국에서는 시스투스가 자연 발화한다고 알려졌을까요?
1. 방향성 오일 함유
시스투스는 잎과 줄기에 방향성 오일(수지, 레디노이드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이 오일은 건조한 기후에서 휘발성이 강해져 불이 붙기 쉬운 환경을 조성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이 붙는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2. 불에 강한 생태적 특징
시스투스는 화재 후에도 쉽게 발아하는 종으로, 지중해 지역은 여름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 계기로 발아가 촉진됩니다. 그래서 불과 연관된 식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3. 지중해성 기후와 산불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에서는 여름철 고온 건조한 날씨로 인해 자연 발화로 의심되는 산불이 자주 발생합니다. 이때 시스투스가 많은 지역에서 불이 빠르게 번질 수 있어, 마치 시스투스가 불을 일으킨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고산 마을의 숲과 농가에서 발생한 자연발화는 낙뢰 때문에 집이 탄 경우가 한 번 있었습니다)
결론: 시스투스는 휘발성 오일을 포함하고 있어 산불 확산에 기여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을 내는 식물은 아닙니다. 이는 잘못된 정보이며, 실제로는 불이 난 후에도 강한 회복력을 지닌 생태적 특징 때문에 화재와 자주 연결되어 왔던 것이지요. 하지만 스페인 자연에서 수년간 살아본 저는 시스투스 때문에 불이 났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시스투스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해 만약 자연발화 되었다면 지금쯤 스페인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시스투스 정보가 한국에서 잘못 퍼진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이 식물의 생태적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도 꽃을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께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 이제 봄입니다. 오늘은 스페인 지중해 연안의 시스투스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함께 공유합니다. 꽃을 보면서... 아! 어서 따뜻한 계절이 다가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소망합니다. 물론,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계절은 올 때 올 것이고 갈 때 갈 것이지만 말이에요.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면서 때때로 작은 아름다움을 놓치곤 하는데요, 이렇게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하는 꽃 한 송이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자연이 주는 위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시스투스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우리도 닮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오늘도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하세요~ 💜🌿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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