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자연

스페인 고산에 한국인이 살면 생기는 봄 텃밭

산들무지개 2021. 3. 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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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마을 가게 앞 상추 모종이 방긋하고 인사하듯 눈에 들어왔다. 

얏호~! 드디어 모종이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후다닥 세우고, 누가 싹쓸이라도 할까 봐 바로 가게 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왜 이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걸까?)

마음 같아서는 모종판을 다 사고 싶었으나...... 우리 집 텃밭은 그 모종을 다 받아들일 면적이 부족해 겸손하기로 했다.

'15포기만 사야지~!'

 

우리가 사는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평야의 날씨는 참 이상하다. 아니, 한국의 온화한 온대성 기후와 비교하면 이상한 날씨라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이곳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계절과 날씨일 터니......

봄이 와도 그렇게 온도가 높게 올라가지 않고 여전히 추운 곳이다. 겨울과 같은데 겨울보다는 조금 따뜻하다고 할까......

노지에서 막~ 씨를 뿌리기에는 발아하는 온도가 도달하지 않아 한 6월 정도 기다려야 하는 날씨다. 그렇다고 6월에 발아하면 멋지게 성장하지 않고, 갑자기 찾아온 고온으로 (7-8월의 고온, 38~43도 정도) 일찍 추대해 온전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그 대표적인 게 배추다. 배추씨를 뿌리면 손바닥만 하게 성장하다 갑자기 꽃이 올라와 끝난다. 그렇다고 겨울에 배추를 키우면...... 너무 건조하고 바람도 세고...... 온실은 다 날아가기 일쑤고...... 그렇다고 비가 자주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배추는 일찍 포기했다. 뭐 이곳 날씨는 한국 날씨에 비해 이상한 날씨는 분명하다. 배추는 겉절이용만 성공했다.

 

지금 키우고 있는 모종은 들깨~ 깻잎을 위해 키우고 있는데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 성장 속도가 무지 느리다...... 원래도 성장 속도가 느리지만 고산이라 더 느린 것 같다. 낮에는 밖에, 밤에는 실내에 두는데도 튼튼한 놈 한 놈이라도 나면 좋겠다. 매번 실패했는데 올해는 꼭 이루고 싶다~~~ 깻잎쌈이 올해 목표다!!!

 

인간의 집념은 얼마나 대단한지...... 텃밭을 일찍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뭐라도 심으려는 본능은 억누를 수가 없다. 이곳의 스페인 이웃들 보면 텃밭 가꾸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다~ 포기했다는 뜻이다. 딱 빈센트 아저씨만 매년 되지도 않는 토마토를 심고, 고추를 심는다... ㅠㅠ (온도가 도달하지 않아 토마토도 잘 자라지 않는 곳에 우리는 산다) 이번에도 빈센트 아저씨는 토마토 모종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 줄 것도 함께 키운다고 하니 무지 기대가 된다. 이곳에서 나는 방울 토마토만 성공했다. 물 많이 먹고 자라는 샐러드용 토마토는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물 적게 먹는 페라 토마토는 한두 해 성공한 적이 있다.

 

"몇 포기 줄까요?"

가게 주인이 물었다.

"20포기 주세요."

 

마음으로는 15포기만 산다고 해놓구선...... 내 작은 욕심이 결국 20포기를 사게 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4포기를 더 얹어줬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자 되는 모종~! 

 

요즘 서양버찌나무에 꽃이 한창이다. 예쁘다. 벚꽃처럼 화려하게~, 흐드러지게 피지는 않는다..... 고산이며, 야생이다 보니 좀 초라하게 피어난다. 그래도 핀 자태는 아름답고 화려하다. 

우리 텃밭 가장자리에 자라고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그리고 작년 나에게 반전을 주었던 열무!

작년 6월에 열무를 심었는데, 스페인 고산의 고온으로 싹~ 말라버리고 말았다. 난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 그냥 방치했는데...... 가을 겨울 땅에 박힌 무가 잘 견디며 싹을 틔우더니 봄이 오니 이렇게 푸르게 자라나 꽃까지 피웠다. 

씨를 수확할 목적으로 남겨뒀다. 제발 씨까지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이 열무는 스페인 고산에서 금방 자라줘 효자 식물이다. 2주면 먹음직스러운 열무 비빔밥을 해먹을 수 있으니.....

 

마른 열무라도 다시 보자! 뿌리만 있으면 되살아나는 신통함을 가진 녀석~

죽은 열무 사이로는 가게에서 사 온 상추 모종을 심었다. 한국식으로 잎을 따 먹을 요량으로 간격을 촘촘히 했는데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다. 잘 자라주면 정말 좋겠다. 이 상추를 위해서는 이틀에 한 번 꼭 물을 줘야 한다. 이곳에서는 물이 참 귀한데, 여름 식탁의 쌈을 위해서라면 없는 물도 쥐어짜야겠다! 

 

그리고 마늘~! 우리 한국인에게 마늘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 

난 마늘종이 먹고 싶어서 마늘을 심었다. 스페인에 살면서 마늘종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전에 페페 아저씨가 마늘종을 버리려고 해서 내가 사정 통곡해 얻어온 적은 있었다. 그 맛있는 것을......! 그리고 그 후 스페인 마트 냉동 코너에서 마늘종을 발견하고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도 난다. 스페인 사람들도 마늘종을 먹는데 그다지 흔하게 먹는 음식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위의 사진은 대파...... 요즘 한국에서는 파테크가 유행한다고 하는데...... 난 이 파를 위해 2년을 길렀다. 쪽파 스타일로 크는 파이며, 꽃이 나지 않고 작은 양파(주아) 같은 게 또 달린다. 작은 양파를 땅에 심으면 또 싹이 오른다. 검색해보니 '삼동파'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텃밭 한 고랑을 다 채웠다. 그런데 아쉽게도 양 떼가 들이닥쳐 어느 저녁에 다~ 잡수셨다. :(

작은 파를 잘라먹기에는 좀 더 키워야 할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하고, 좀 더 자라면 부족함 없이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에 좀 잘 여물어주면 좋았을 것을......! 쪼글이 양배추! 네 포기는 양이 와 잡수셨고, 두 포기만 남았는데 알이 너무 작아 먹는데 망설여진다. 그래도 꽃이 피기 전에는 먹어줘야겠다. 

 

앗! 앞서 말은 하지 않았는데 가게에서 사실, 상추 모종 말고도 양파 모종, 200뿌리를 사 왔다.

아아악~! 이 좁은 텃밭에 양파 들어갈까? 잘하면 들어갈 거야~ 욕심은 아닐 거야. 구석구석 심어놓으면 어찌 됐건 잘 자라날 거야~ 혼자 위로하며 오늘은 양파 심기에 돌입해야겠다. 글쎄 양파 모종 200 뿌리가 2유로(약 3천 원)라고 하니 욕심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일을 만드는 나, 그래서 이 봄날이 무척 바빠졌다. 그리고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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