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이야기/시사, 정치

스페인 행정 업무가 느려 속 터진다고들 하지만...

산들무지개 2017. 12. 19.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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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고장이 나 정비소에 맡긴 지 약 5일이 지났습니다. 주말에는 쉬기 때문에 더 시간이 길어졌지요. 사실, 오늘 제가 발렌시아 갈 일이 있어 참 필요로 했던 차인데 차가 정비되지 않아 버스-기차를 이용해야 했답니다. 

해발 1,200m의 이 고산 마을에서 하루에 딱 한 대의 버스가 새벽 6시에 출발하고요, 똑같은 버스가 오후 3시에 이 마을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래서 차 시간을 아주 잘 지켜야만 합니다. 오늘 오후에는 꼭 차가 정비되어 차를 끌고 올라올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혹시나 몰라 발렌시아에서 있는 일을 빨리 끝내고 버스 올라오는 시간에 맞추어야만 했답니다. 

새벽 6시, 엄청나게 추운 이 고산마을을 떠나는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는 우리 동네 아이 학부형이기도 한데 매일 이렇게 고생이십니다. 그렇게 2시간 만에 아랫마을 카스테욘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발렌시아로 가기로 한 것이지요. 

이제 기차역에서 표를 끊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기차역 창구 직원이 다수가족 카드를 대체할 카드를 만들면 좋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기차 전용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쓸 일이 없어 몇 달이나 쓰지 못한 채 이렇게 지갑에만 넣고 가지고 다녔지요. 도대체 이 카드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사실, 저는 기차역에서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답니다. 다수가족 카드만 보여주면 할인이 되기 때문에 항상 창구에서 구입했지요. 


▲ 흔한 도시와 도시를 잇는 세르카니아스(Cercanias)

▲ 다수가족 카드 없어도 할인되어 요금 산정되는 기차 카드


이번에 창구에서도 "발렌시아 왕복 주세요~!" 했지요. 그런데 가지고 있는 새로운 카드가 궁금해서 물었죠. 

"그런데 이 카드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예요? 이거 할인되는 카드라고 해서 가지고 다니는데......!" 

그랬더니, 창구 직원 아저씨께서 그럽니다. 

"저쪽 기계에서 충전하여 사용하면 됩니다."

"충전요?"

"네~"

이러셨으니, 저는 이 카드를 가지고 기계에 가서 충전하면 더 쉽게 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구 직원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러십니다. "제가 가르쳐 줄게요."

'아니, 일하다 말고......'

사실, 제 뒤에는 줄을 서서 기차표를 끊으려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직원 아저씨는 아주 느긋하게 사무실을 나와 저를 안내합니다. 만약, 제가 줄 서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화를 냈을 거라고도 생각했어요

"아니, 일하다 말고 어딜 가세요? 

아니, 이 아줌마는 아직 기계 사용하는 법도 배우지 못하고 저렇게 직원을 불러요? 

이거 민폐 아니야? 뒷사람들 생각 좀 하지......"

혹은 한국 같으면 

"저쪽 기계에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음 분요~!" 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한국에 오랜만에 갔을 때 은행 및 시청에 일 보러 갔다 이렇게 빨리빨리 업무를 보시는 분들 때문에 많이 당황한 적이 있거든요. 기다리지 않아 참 좋았지만, 뭔가 빠져서 다시 해야 했던 경우가 있었지요. 

물론, 빠르고 친절하여 한국 행정 업무는 최고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빠진 무엇인가가 있었어요. 

다행으로 이 기차역에는 다른 창구도 열려 있었고, 승객은 다른 직원에게 표를 살 수 있었습니다. 대신 표 사는 일이 더 늦어져 제가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 최근에는 더 다양한 티켓 판매대가 설치되었습니다. 


이제 직원이 저를 안내하여 충전하는 기계를 설명해주었어요. 

"이곳에 카드를 넣고, 원하는 요금을 눌러주세요. 자, 해보세요."

저는 순순히 따라 했죠. 

"이제, 요금이 나오면 요금을 내세요. 여기는 현금카드와 신용카드로, 여기는 현금으로..... 해 보세요."

또 순순히 따라 했어요. 

"자, 영수증 받고 싶으면 이곳을 누르고요, 거스름돈은 이곳에서 받으세요. 마지막으로 충전된 카드를 빼면 된답니다."

오~~~ 이렇게 친절하실 수가! 평소에 그렇게 무뚝뚝하던 이 직원이 이렇게 친절히 가르쳐주니 조금 놀랐습니다. 마지막에는 눈 한번 찡긋 윙크까지 해주고...... 활짝 웃어주는 아저씨 덕분에 하루가 참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네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스페인에 여러 해 살면서 이런 경우를 꽤 많이 겪었네요. 특히 행정 업무가 느려서, 많이 기다려서 속 터지는 일도 많았는데...... 하나같이 제 차례가 되면 그 속 터지던 일도 수그러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차례가 되면 기다린 시간을 보답해주기 때문이지요. 

▲ 새벽, 기차 안에서 보는 동 트는 풍경

궁금한 점과 필요한 부분이 다 해결되도록 끝까지 기다리고 인내해줍니다. 행정 업무를 보는데 뒷사람이 재촉한다 생각하지 않고 내 문제를 말하고 그것을 풀어주기 때문에 업무가 느리다고 화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스페인 사람이 다 되어가는지, 이제는 기다리는 일이 그렇게 속 터지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는답니다. 분명, 제 차례가 다가오면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해줄 업무원이나 행정원들이 있으니 말이지요. 이민 초기에는 "왜 저 사람들은 뒷사람 생각하지 않고 저렇게 수다를 많이 떨어?" 하면서 혼자 불편해했던 적이 있는데, 이제는 이 생각을 하지 않는 제 자신이 적응했구나 싶습니다. 

기계치는 아니지만 (혼자 했다면 분명 조금 헷갈렸겠지만), 기차역 창구 직원 덕분에 쉽게 터득하여 배운 이날, 그 기분 좋은 에너지 덕분이었는지, 정비소에서 차가 다 수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기분 좋게 말끔히 고쳐진 차를 끌고 일을 다본 후, 우리 집으로 올라올 수 있었네요. 


↗ 제 유튜브 채널입니다. 소소한 일상을 동영상으로 보여드립니다~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12월의 남은 날들 우리 모두 알차게 보냅시다!!! 화이팅!


♥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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