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부부

나보다 더 한국인 같은 남편

산들무지개 2017. 2. 2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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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우울해지는 계절인가 봅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우울한 날들이 있는데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은 마음 안에서 오는 어떤 먹먹함으로 가끔 '가슴앓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앓이인지 정체는 전혀 모르겠는데, 왜인지 모르게 먹먹함으로 한숨이 퍽퍽 나오고 갑자기 외롭고 슬프고 우울해지는 그런 쓸쓸함이 막 파고듭니다. 

"내가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상한 '가슴앓이'입니다. 설마? 갱년기? 갱년기는 좀 더 늙어야 찾아오는 것 아닌가? 아니면, 벌써 그럴 징조가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설마? 라는 말이 나오지만, 이 느낌은 참 소녀적인 감성이라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그러다가도 문득 나오는 소리, 

"그럼 이 슬픔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눠볼까? 어디 반으로 줄어드나 보게?"

하는 희한한 해결 방법도 제 입에서 나옵니다. 이거, 난감하네~, 제가 불혹이 되니 이런 혜안(?)의 목소리가 문득문득 나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웃기는 건, 참 나이 드니 좀 웃기기도 하구나, 싶습니다.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고, 혼자 이렇게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것 보니......

그래서 남편과 이 원인 모를 슬픔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어디, 반으로 나누어지나 보게......

그런데 이 산또르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습니다. 

"뭐~ 다들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역시, 반으로 줄지 않는구나, 싶다가도 남편이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보니 그것도 아닙니다. 

"아빠, 나는 동물 중에 고양이가 제일 좋아. 아빠는?"

큰 아이가 이런 말을 하니, 아빠는 대답합니다. 

"나는 동물 중에 엄마가 제일 좋아."

아이들은 희한한 눈으로 아빠를 쳐다봅니다. 

"왜? 엄마도 동물이잖아!"

우하하하하! 웃음이 나오네요. 그래, 역시 원인 모를 슬픔이 반으로 줄었구나. 저를 동물로까지 표현하면서도 저를 좋아한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제가 오늘 아침 세면대 하수구 청소하다 해결하지 못한 일을 이야기하니, 남편이 그럽니다. 

"하수구 찌꺼기 뭐로 건져 올렸는데?" 

"응~ 나이프로 살짝살짝 건져 올렸어~ 그래서 다 찌꺼기 없앴는데도 자꾸 막히네."

"아이고~ 이 사람아! 한국 사람이 한국식으로 해결해야지. 몰라? 젓가락으로 해결하는 법?"

그러면서 젓가락을 꺼내와 하수구에 들이대고 뭔가를 집어 올립니다. 아~ 하수구 찌꺼기가 막 잡히는 겁니다. 순간, 웃음이 나오네요. 

"나보다 더 한국인 같아!" 

이렇게 저를 웃기게 하려고 노력을 하네요. ^^* 그래서 많이 웃었네요. 역시 부부란 어쩔 수 없이 슬픔과 기쁨은 같이 나누어 보니, 그 나눔을 재미있게 또 나누다 보면, 슬픔은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배로 늘어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편은 오늘 작업하는 제 앞에서 아이고 배고파~ 죽는소리를 하면서도 그럽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밥 다 차릴 게. 당신은 앉아서 어서 작업이나 계속해." 합니다. 

설마? 이것을 눈칫밥이라고 하는 걸까? 어느새 이 남편이 눈칫밥 같은 것을 알아가고 있는 것일까? 

요즘 정신없이 하는 일에 몰두하라고 하는 소소한 배려가 눈에 다~ 보이는 남편입니다. 살아보니, 이제 부부가 남매 같고, 친구 같고, 국적이 모호해지면서 우린 천생 이렇게 사는구나, 어느 화창한 날 소소히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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