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부부

스페인 남편도 반한 겨울철 위문품 '한국 고무장갑'

산들무지개 2017. 1. 2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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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밖에서 놀았으면 아이의 손등이 추위에 터져서 그렇게 애처롭게 보일까요? 화들짝 놀라며 요즘 아이들도 손등이 트네~, 하고 감탄을 하는데, 다시 생각하니, 아니! 우리 아이가 사는 곳이 스페인 고산의 시골 마을이니 추운 겨울에 손 트는 것은 당연하지! 싶습니다. 


고사리손 등에 로션을 발라주면서 아! 역시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추운 줄 모르고 그렇게 노는구나, 싶었답니다. 어릴 적, 엄마가 해 저물어가는 늦은 저녁에, 얘야~! 얘야~! 밥 먹어라! 하던 고함 소리가 갑자기 생각납니다. 아! 내 아이도 지금 해가 저물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정신없이 밖에서 추위 아랑곳하지 않고 노는구나, 싶었답니다. 



그리고 제 손등을 보았답니다. 아이 셋이 생기면서 어쩐지 더 많은 육아와 집안일로 제 손등도 트지 않았나 싶어서 말이죠. 역시나 손등은 터 있었습니다. ㅠ.ㅠ 그렇다고 처량하게 보지는 말아주세요. 이곳은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려고 해도 전기가 부족한 곳이라 애당초 들여다 놓을 수 없답니다. 또한, 인도 작가이자 녹색 성자, 사티시 쿠마르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런 자연적 삶이 얼마나 인간적 노동이 소중하게 느껴지는지도 절감하게 됩니다. (사티시 쿠마르 어머니는 재봉틀로 옷을 만들면 더 쉽지 않으냐는 자식들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어머니의 노동은 손으로 한 뜸, 한 뜸 직접 만드는 옷이었으니 말이죠. 아무리 자동이 좋다는 시절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동이 가능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라는 어쩌구저쩌구...... 그렇다고 전 뭐 그 작가의 어머니처럼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에 위안으로 삼고 손수 설거지하는 즐거움을 맛본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한국에서 친구가 소포를 잔뜩 보내주었는데요, 그 소포 안에는 고무장갑이 종류별로 수두룩 들어있었답니다. 뭔 고무장갑의 종류도 이렇게 다양할까, 처음엔 놀랐답니다. 시뻘건 고무장갑이야말로 제 머릿속에 박힌 전형적 고무장갑이었는데 말이죠. 시뻘건 고정된 이미지의 장갑을 빼고도 다양한 그 디자인이란?!


"아이쿠! 여기도 고무장갑 많이 파는데 왜 이것을 보내줬을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하긴 스페인 고무장갑은 너무 단순하고 팔뚝까지 오는 것이 아니라 손목 부분이 다여서 가끔 너무 짧다는 생각도 했었답니다. 그런 면으로는 이 목이 긴 한국 고무장갑이 아주 좋았답니다. 


 


스페인 고무장갑은 아예 사지를 않습니다. 

한국제 고무장갑에 맛이 들었다고 봐야 할까요? 


"손도 보호해야 하지만, 찬물에 손 많이 담그면 안 되니까 이렇게 장갑을 보낸다. 스페인 고산의 추운 겨울에 혹여, 찬물로 설거지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는 게 친구의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다 답답한 것을 싫어하는 전, 이 고무장갑을 깜빡 잊다 말이죠, 겨울철 급작스럽게 손등이 트면서 이 고무장갑을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신선한 질감과 편안함을 주어 놀랐답니다. 속은 천처럼 부드럽고(이게 아마 기모 장갑이었던 것 같아요) 겉은 단단하니 좋아 찬물에 설거지해도 시리지 않고 좋았답니다. (물론, 보통은 따뜻한 물로 설거지한답니다.)


너무 좋아 노래를 부르면서 친구에게 전화해서 좋다고 했죠. 

너무 좋아 스페인 남편인 산똘님께 이 기막힌 고무장갑에 관해 이야기했답니다. 


"이 고무장갑 너무 좋다. 역시 한국 물건이 스페인 것보다 훨씬 좋아~." 하고 말이죠.  


어릴 적 우리 엄마도 자주 고무장갑을 끼고 집안일을 하셨댔죠. 그 풍경이 겹치면서 어쩐지 이 고무장갑이라는 것은 어머니와 시린 손, 부엌 일, 집안일, 알뜰함, 따뜻함, 희생, 등등의 단어가 떠올랐답니다. '고무장갑'이라는 것은 단순한 단어가 아닌 정신적인 어떤 의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친구의 그 걱정과 배려가 떠오르면서 전 고무장갑을 애지중지하게 되었답니다. 

이런 모습을 본 남편이 그럽니다. 


"우이씨! 나도 한국 고무장갑 낄 줄 아는데......! 왜 당신한테만 보내줬대? 당신한테만 일하라는 거야?"

이럽니다. 제가 생각하던 고무장갑의 그 정신적 의지가 와장창 깨지면서 남편의 말이 좀 일리가 있기도 했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 친구가 내 생각해서 저 멀리서 고생이나 하지 말라고 보내준 고무장갑인데...... 하고 말이죠. 

그러다 이 이야기를 친구와 함께 통화하면서 나누게 되었답니다. 


그 통화를 한 한 달 후, 

우린 제 친구에게서 라지 사이즈의 한국 고무장갑을 받게 됩니다. 



"네 남편도 집안일 열심히 하라고 보내는 고무장갑이야. 내가 미처 네 남편 생각을 못 했구나. 그럼 이 한국 고무장갑 잘 끼고 겨울철 잘 나길 바란다."하고 메세지를 보내줬습니다. 하하하!


남편에게 '자기 스스로 구멍 팠구먼!' 하고 속으로 웃어댔지요. 

그런데 이 남편이 이 한국 고무장갑 좋다고 받아 들고, 요즘에는 맥주 만들 때 뜨거운 액체에 손 대지 않으려고 사용한답니다. 더불어 설거지 필수품, 이 한국 고무장갑! (저 완전 장사꾼 같습니다.)

어쩐지 속은 천처럼 부드럽고 겉은 단단하여 뜨거운 액체에도 보호할 수 있어 좋다는 그의 말......!



이제는 주부 습진으로 고생하는 스페인 동서에게도 이 한국 장갑을 선물로 할 정도입니다. 스페인 장갑은 너무 단순해서 이런 한국산 고무장갑 형태의 것은 사실상 판매하지 않지요. 그러고 보니, 이런 소소한 풍경이 아주 재미있네요. 지구 한 편에서는 인종 다른 동서와 형님이 서로 좋다고 한국 고무장갑을 나눠쓰고 공감하는 장면요. 


오늘 아이의 손등과 내 손등에 로션을 바르면서 친구 생각을 무지 많이 했네요. 

이런 추운 날, 정신적 위문품으로 참 따뜻한 겨울을 맞는구나, 싶습니다. 

역시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오늘 새삼 깨닫습니다. 



이제 설입니다. 

마음 따뜻해지는 설입니다. 

곧 발렌시아에 사는 한국 친구도 합류할 예정이니 

더 훈훈한 외국에서의 설이 될 것 같습니다. 

기쁜 설 보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정신적 위문품은 무엇인가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으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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